감천 문화마을의 태동 “태극도촌”

Welcome to 태극도 사주. 감천 문화마을로 국내외적으로 유명한 감천2동에 대한 수많은 책들과 관광 정보에 대해서, 고의적이거나 자의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골수 태극도 신자와 태극도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태극도 교주 조철제가 1955년 감천2동으로 이주하기 전부터 감천2동에는 감천 국민학교 분교가 있었고 감천 국민학교 (현 초등학교) 졸업생은 1953년 400명, 1954년 420명, 1955년 440명을 배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 감천2동 주민센터 자리에는 1953년 240명 정도 학생을 수용하던 감천 국민학교 분교가 있었습니다.

현재 감천2동 주민센터 자리, 감천국민학교 분교 조회중

감천국민학교 2동 분교 조회 사진

아래 감천초등학교 연혁에는 빠져있지만 1952년 03월 28일 본교를 감천 1동에 설립하고 1953년 3월 감천2동 분교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 중순까지는 감천국민학교 여학생 배구부가 전국 배구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냄으로 당시 사학 명문인 남성여중 배구부를 거쳐서 남성 여고 배구부에 장학생으로 진학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볼 때, 감천2동 문화마을 홍보 책자나 관련 저서들을 보면, 역사 왜곡이 심하고, 자의적으로 변질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감천 문화마을의 성과로 주거 인구가 늘었다는 낮 뜨거운 자화자찬 글들이 보이던데, 이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들은 태극도를 믿는 새로운 종교인이거나 감천 문화마을의 성과에 힘입어 한몫 보려는 외지인들입니다.

감천국민학교 1동 본교
감천국민학교 1동 본교

또한 감천 문화마을 관련, 여러 책자들을 보면 (사하구청 발간, 골목에서 시작된 기적 : 감천문화마을을 스토리텔링하다) 감천2동을 현재 감정초등학교 건너 횡단보도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1감에서 9감까지 나눴다는데 특이한 점은 전라도 사람들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태극도 교주 조철제가 살아온 경력을 보면 (왜 감천2동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없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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